여름철 농가의 주식이었던 수제비
수제비는 예전부터 농가에서 여름에 빠질 수 없는 주식이었다고 합니다. 긴 여름 해에 쌀과 보리가 떨어지면 미역국을 팔팔 끓이고 부드럽고 질척하게 반죽한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수저로 떠 넣고 익힌 수제비는 넉넉한 집에서조차 여름철 별미로 즐겨 먹었습니다. 늦더위가 물러가는 고비인 칠석날에는 반드시 밀전병과 밀국수를 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칠석이 지나면 날이 선선해져서 밀가루 음식이 맛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밀가루가 지금은 사시사철 흔하지만 밀가루 음식은 역시 여름철이 제철이라 합니다.
별미중의 별미 수제비
6·25 전쟁 후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자란 사람들은 죽이나 보리밥, 수제비를 싫어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별미로 즐겨 찾습니다. 수제비는 장국을 끓여서 부드럽게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얇게 떼어 넣거나 주걱올려놓고 수저로 떠 넣어 구수하게 끓이는 서민 음식입니다. 장국은 조개나 소고기로 끓이기도 하지만 멸치를 넣어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채소나 미역만 넣고 끓이기도 합니다. 여름철에는 애호박이나 감자를 얇게 썰어 함께 끓이면 정말 맛있습니다. 밀가루에 녹말가루를 섞으면 아주 매끄럽고 경상도 통영 지방에서는 수제비를 군둥집, 이북에서는 뜨더국이라고 부릅니다.북한의 자랑스런 민족음식이란 서적에는 수제비류의 음식으로 밀가루 뜨더국, 강냉잇가루 뜨더국, 찬밀제비국, 가재탕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밀수제비의 장국은 채소장국, 고기장국, 물고기장국, 미역국, 다시맛국 등에 적당하게 양념을 하여 끓여 먹을 수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뜨더국의 맛을 좋게 하려면 밀가루 반죽을 잘 해야 하고 손에 물을 묻혀가면서 얄팍하게 늘이듯 뜯어 넣어야 한다고 합니다. 팔팔 끓는 장국에 뜯어 넣은 밀제비가 하나씩 익어서 떠올라야 하기때문에 계속 센불로 끓여줍니다. 그래야 장국이 걸쭉해지지 않고 뜯어 넣은 떡이 매끈하고 쫄깃쫄깃합니다. 밀가루 뜨더국은 만들어서 바로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합니다.
수제비는 종류도 많아
강냉잇가루로 수제비를 만들 때는 가루의 3분의 1을 끓는 소금물로 묽게 익반죽하여 끓는 물에 삶고 나머지 가루는 물기를 맞추어 가면서 말랑말랑하게 반죽하며 가재탕을 할 때에는 밀가루는 미지근한 소금물로 말랑말랑하면서 너슬하게 버무려 얄팍하게 비비면서 마른 가루를 섞어가며 작은 알이 되게 비벼 국물에 넣어줍니다. 마른 가루가 반쯤 풀어져 국물이 걸쭉하고 부드럽다고 합니다. 찬밀제비국은 밀제비를 만들어 삶아서 찬 장국을 부어 먹는 음식으로 콩국에 말아도 맛있다고 합니다.
칡수제비는 칡뿌리를 짓이겨 녹말을 가라앉혀 만들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이 특별합니다. 칡뿌리는 속병이 있거나 술로 탈이 난 사람들에게 약으로 많이 쓰이며 칡을 토막내고 결대로 잘게 썰어서 절구에 힘껏 찧어서 삼베나 헝겊에 쌉니다. 충분히 헹궈서 우려낸 뒤 건더기는 꼭 짜서 버리고 그 물을 하룻밤 두면 바닥에 흰 녹말이 가라앉는데 수제비는 버섯이나 고기로 장국을 팔팔 끓이다가 윗물을 쏟은 칡녹말을 수저로 하나씩 떠 넣어 칡 색깔로 말갛게 끓여주고 버섯을 넣을 때는 잘 어울리는 능이버섯이 좋으며 표고나 느타리를 넣어도 상관없습니다. 칡수제비는 뜨거울 때 먹어야 쫄깃쫄깃하고 제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밀이 귀한 지역에서 가장 흔한 재료로 감자, 강냉이, 메밀, 도토리 등으로 수제비를 만들고 감자수제비는 감자녹말과 무거리로 만드는데 동그랗게 만들기 때문에 감자옹심이라고도 불리며, 강냉이수제비는 강냉잇가루만으로 만들거나 밀가루를 섞어서 만듭니다. 나깨수제비는 메밀의 속껍질을 빻아 체에 치고 반죽하여 굵게 썰어 끓인 것이며 도토리수제비는 도토릿가루를 반죽하여 끓인 것으로 상실운두병이라고 하며 보리나 보릿겨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황해도에는 또덕제비라 하여 닭 국물에 끓인 밀수제비가 있고, 제주도에는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멸치장국에 뜯어 넣고 미역을 넣어 끓인 메밀저배기가 있습니다.
수제비의 유래
고려시대에는 밀의 수확량이 적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밀을 주재료로 하는 수제비를 서민의 음식으로 보기는 어려워 수제비는 서민의 음식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수제비는 운두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기록된 운두병의 조리법을 보게 되면 좋은 밀가루에 다진 고기와 파, 장, 기름, 후춧가루, 계핏가루를 넣고 되직하게 반죽하고 닭 국물에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 넣어 익히고 그릇에 담아 닭고기를 얹어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러 조리법은 서민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양반가의 음식으로 짐작되며 수제비는 6·25 이후 다량의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유입되면서 서민들의 주식으로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생활수준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주식이라기보다 가난했던 지난날의 향수 어린 별미 음식의 성격이 강합니다. 수제비는 밀가루로 만든 밀수제비, 밀가루를 뇐 찌꺼기로 만든 노깨수제비, 통밀을 맷돌에 갈아 만든 막갈이수제비가 있고 이외에도 메밀가루로 만든 메밀수제비, 감자녹말로 만든 감자수제비, 칡뿌리녹말로 만든 칡수제비, 어린 보리싹을 볶아 찧어 만든 보리수제비, 보리쌀을 대낄 때 나온 겨를 반죽하여 만든 겨수제비, 송기가루로 만든 송기수제비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제비는 물의 분량이 많아서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을 섭취하기가 매우 어려워 수제비를 먹을 때는 되도록이면 채소·육류·생선 등을 함께 섞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수제비 재료(4인분)
밀가루 3컵, 녹말가루 2큰술, 호박 ½개, 감자 1개, 다진 마늘 1큰술, 다홍고추 1개, 멸치(장국용) 50g, 물 12컵, 실파 30g, 국간장 2큰술, 소금 적량, 달걀 1개, 소금 2작은술, 물 1컵
수제비 만드는 법
밀가루에 녹말가루를 섞어서 체에 쳐주고 달걀을 풀어서 물과 소금을 넣고 체에 친 밀가루에 조금씩 부어 끈기가 생길 때까지 반죽해줍니다. 실파는 4cm로 썰고 다홍고추는 어슷하게 썰어줍니다. 감자와 애호박은 반달 모양으로 납작하게 썰고 장국용 멸치로 멸치장국을 끓이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호박과 감자, 다진 마늘을 넣어 끓여줍니다. 감자가 익어가면 밀가루 반죽을 물 묻은 손으로 얇게 떼어 넣어줍니다. 수제비가 익어서 물 위로 떠오르면 실파를 넣고 잠시 더 끓여서 대접에 담아줍니다.
간단하고 맛있는 수제비 오늘처럼 흐린 날 저녁 한끼 때우기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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